공간의 의미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오프라인의 가치
2021-08-16

오프라인이 주는 디테일이 있다. 책에 따르면 미세한 얼굴 표정, 시간과 공간의 강제에서 오는 권력, 다양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기회,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얻는 안도감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오프라인은 중요하다. 온라인이 주목 받으면서 오프라인이 필요 없어질 것 처럼 이야기되지만, 오히려 오프라인만이 갖을 수 있는 강점과 힘이 더욱 커진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되어도 장거리 연애는 실패한다. 오프라인만이 갖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이렇게 꽤나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졌는가 새삼스럽기도 하다. 과거 20-30년간 소수의 온라인이 점점 오프라인을 대체하여 먹어치워 버렸다. 오히려 온라인은 친숙해졌고, 오프라인만이 갖는 가치를 사람들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나도 아직까지는 오프라인 고유의 가치를 매우 믿는 편이다. 원격 회의 보다는 한 공간에 모여서 일하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점점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더더더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의 고유의 영역이 있을 것인가. 다 섞여있겠지만 서로의 의미와 역할이 역동적으로 변할 것임은 틀림 없다. 만약 기술로 장거리 연애가 성공하는 날이 올까? 최근 온라인 데이팅앱에서 만남을 시작해 1년만에 오프라인에서 처음 만났다는 한 커플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는 좀 더 파격적으로 빨리 변할지도 모르겠다.

공간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다. 인류 관점에서도, 사회 관점에서도, 나아가 내 개인의 생활 관점에서도 그러한 것을 절실히 느낀다. 건물이 높게 지여저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야 도시가 형성된다. 훈련소나 학교, 직장의 자리 등 공간이 주는 집단형성의 기능은 정말 막대하다. 내 집의 채광, 구조, 크기, 위치, 동네 환경 등은 정말로 나의 하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얼마전 신대방에서 선릉으로 이사를 왔는데, 깔끔한 강남구, 맛있는 것도 많고, 회사도 걸어서 갈 수 있고, 선정릉의 푸르름도 볼 수 있고, 집도 크고, 전반적인 생활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졌다. 수십만원이 추가로 더 드는 비용은 있겠 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들어 공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관심이 높아졌다. 공간(오프라인)의 의미에서 무엇은 변하고 무엇은 변하지 않을까.

덧) 유현준 교수의 책과 강의들을 여러번 보았다. 그는 공간이 갖는 의미를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전달하고, 그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지금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와도 결부하여 현실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간의 의미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지금 내 삶에 문제와 그것을 연결하는 데 그의 주장이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갈무리

  • 인간은 화상 통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손을 잡는 데이트를 포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라인 기회와 오프라인 기회가 있다면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 두 가지 기회를 모두 가지려고 할 것이다.
  • 이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피엔스만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그런 성향 때문에 지금도 매년 트렌드가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옷을 입을 때에도 유행을 따라 하려 하고, 천만 명이 넘은 영화는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대중의 흐름에서 이탈될 경우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 기업 철학이 없으니 많은 수의 사원을 하나의 마음으로 만들기 위해서 유니폼 같은 동일한 복장을 하고, 회사 로고 배지를 달고,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에 모여서 일하는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마스크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다. 동양인인 우리는 휴대폰에서 웃는 얼굴을 표현할 때 ‘^^’로 웃는 눈을 표기한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로 웃는 입을 표기한다. 동양은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양은 입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인간의 얼굴 근육에서 의지로 조정이 불가능한 근육이 눈 주변의 근육이라고 한다. 입은 의식적으로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지만 눈은 가짜로 속이기 어렵다. 그래서 미인 선발 대회에서 긴장한 참가자들이 계속 웃고 있는 모습이 어색해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눈으로는 웃지 않는데 입으로만 웃기 때문이다.
  • 인간은 얼굴을 인식할 때 측두엽을 사용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 그만큼 얼굴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식당에서 서비스를 받아도 마스크를 쓰고 서빙 하는 사람은 이전과는 달리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이 사라져서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지기보다는 배경의 일부가 되어서일 것이다.
  • 지구상의 공간은 유한하다. 내가 어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 중에서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우리는 시간은 지배할 수 없지만 공간은 소유함으로써 컨트롤이 가능하다. 삶이라는 것은 항상 불안하고 변화의 요소가 많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이 불안 요소를 줄이는 쪽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간다.
  •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공동체는 해체된다. 장거리 연애가 실패하는 원리와 같다. 이처럼 오프라인 공간에서 모이는 행위는 권력 구조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 구조는 공동체를 만든다.
  •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가 즐기는 것은 콘텐츠 자체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는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콘서트의 음악은 CD로 들어도 되고, 좋아하는 가수의 얼굴은 대형 TV 모니터가 더 자세하게 보여 준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동일한 이벤트나 사람을 보고 집중하고 열광하는 것은 인터넷상으로는 대체하기 힘든 경험이다.
  • 생방송이 아닌 녹화 영상을 보게 되면 같은 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선생님의 권위와 권력은 약해진다. 온라인 강의가 아무 때나 필요할 때 들을 수 있느냐, 아니면 생방송이냐에 따라서 선생님의 권위는 차이가 난다. 그래서 요즘 온라인 컨퍼런스를 진행하는 학회들은 자신들의 협회 행사의 권위를 위해서 강연을 실시간 온라인으로만 송출한다.
  • 교복을 입고 있을 때나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복을 입고 번호로 불리던 경험을 한 사람은 그 기분을 알 것이다. 나도 그들 중 일부가 되든지 아니면 반항해서 단체에서 배척을 당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집단의 일부가 되어야만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유전적 본능상 그런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힘들다. 그들은 조직에 순응한다.
  • 전 국립생태원장 최재천 교수는 2020년의 코로나 사태를 지구 온난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한다. 동물은 각 종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한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에는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면역 체계에서 민감하게 반응해 바이러스를 죽이려는 전략을 취한다. 반대로 여러 동물과 접촉하고 수많은 개체 수가 모여서 사는 박쥐의 경우에는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전략을 취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박쥐는 몸 안에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품고 살아가게 된다. 이런 박쥐와 인간이 접촉하게 되면 인간은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된다. 그런데 다행히 인간은 주로 사계절이 명확한 온대 지방에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고, 박쥐는 주로 기온이 높은 더운 지방에서 서식하고 있어서 둘의 서식지가 겹치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열대 기후 지역에 살던 박쥐들이 기온이 오른 온대 지역(인간의 생활 공간)으로 점점 이동해 오게 되면서 인간과 박쥐가 만날 가능성이 늘어났고, 그런 가운데 박쥐에 의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 세계로 전파되었다는 것이 최재천 교수의 설명이다. 따라서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또 다른 전염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 온난화는 시베리아 동토를 녹이고 과거에 활동했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세상에 나올 가능성도 높인다.
  • 그 이유는 온라인상의 관계만 맺는 것보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기회를 동시에 가질 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 화상 통화가 된다고 손잡는 데이트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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