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다

내 회사를 시작하고 싶고,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팔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2020-06-22

22살 여름방학. 개발을 몰랐지만 개발 동아리에 들어가 서비스를 만들었다. 내것을 만든다는 즐거움과 성공에 대한 부푼 꿈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대략 일러스트를 받아다가 투표를 받아 티셔츠로 제작하여 판매한 뒤 수익을 작가와 나누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일러스트로 에코백을 만들어 파는 것을 보고 기획한 서비스였다. 미국에 Threadless가 있어 올커니 했다. 그러나 3개월정도 열심히 만들고 추진력 부족으로 프로젝트 팀은 해체되었다. 한번 뭔가 옷을 떼어 팔아보니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동아리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개발하는 것이 즐거웠다. 프로젝트가 망해도 계속 주말마다 만났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Pocket 과 유사한 url 북마크 사이트를 만들었다. 웹,앱,구글확장프로그램 까지 만들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개발을 했다. 이후에도 합이 맞아 외주도 같이 했다. 주말마다 모여서 서비스를 만들며 2년을 보내다가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를 시작했다. '리멤버'를 만드는 드라마앤 컴퍼니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것이다. 군복무라는 동기를 제외하고도 좋은 회사였다.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고, 나 또한 회사의 비전에 공감 했다. 아직도 리멤버 오퍼레터를 받던 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개발을 알려주던 형에게 연락하며 족발을 사주겠다고 나오라고 했었고, 혹시몰라 시작하기로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과정을 취소했다.

그러나 리멤버에서 서비스를 유틸리이테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일의 어려움을 느꼈다. 다양한 이유로 동기부여가 떨어져 2년 뒤 스타일쉐어라는 패션 SNS 커머스 회사로 이직했다. 프론트엔드에서 백엔드로 전직도 하기도 했고, 돈을 버는 회사에 다녀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전통적으로 현금이 흐르는 커머스업이 매력있게 보였었다. 주변 사람들이 커머스 개발을 하면 성장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정말로 2년 이상 해보니 커머스 개발은 나에게 많은 성장을 가져다 주었다.

2020년이 왔다. 길고긴 2년 10개월의병역특례도 끝났고 대학교 졸업장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길을 잃었다. 병역과 학업은 족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안전하게 가둬주는 울타리었다. 졸업장과 병역특례를 해결하는 과정에는 방향성에 대한 생각이 얕아도 그럭저럭 무언가 성취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병역과 학업이라는 울타리가 없어지자, 나는 심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인생을 뒤집을만한 무언가에대한 갈증은 나를 닳게 했다. 2014년 서비스를 만들어 세상에 부를 창출하고,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은 왠지 모르게 아련하게만 느껴져갔다. 도전에 대한 설레임이 망설임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분명 5년 전에 비해 개발도 잘하고, 개발 외 다양한 역량이 늘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과 겁도 많이 늘었다. 머리에 피가 조금 마른 것이다. 창업과 서비스만들기에 고민이 이어져갔다. 원대한 비전? 뾰족한 문제정의? 큰 시장? 내가 좋아하는 섹시한 아이템? 작은 팀에 들어가 볼까? 따위의 생각들이 나를 멤돌았다.

넷플릭스의 마크 랜돌프의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를 읽는데, "그저 내 회사를 시작하고 싶었고,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파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다였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회사를 시작하고 싶고,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팔고 싶었을 뿐이다."라는 마크의 말에 깊은 울림을 꼈다. 동기에 결핍도 야망도 비전도에 대단히 의미부여할 필요 없다. Why 는 더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해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갉아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언제 어떻게 무엇을 만들지 기회를 노려보면 될 뿐이다.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고 급급해 하지 말자. 어떤 길을 가던 방향성만 잃지 않으면 된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갈 필요는 없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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